배고픈 엔지니어 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철도에 관심 있었던 나는 도서관을 가면 항상 철도 매거진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한국철도의 르네상스라고 불리던 고속철도가 도입되던 2000년 초반에는 국내 철도 학술지나 사보는 있었지만 정작 내 입맛을 만족시켜준 것은 찾기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저기 도서관 구석에 앉아 유창한 영어 실력이 없어 화려한 사진(?)으로만 감상했던 해외 각종 철도 매거진은 에게 철도를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창이었다
페이지를 넘기면 차례로 나타나는 TGV나 ICE와 같은 고속철도 풍경은 경이로웠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기차와 철도와 관련된 각종 사진들은 나에겐 예술 작품 같았고 영어로 쓰여진 인터뷰나 기고글들이 그렇게 멋있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아무튼 시간은 흘러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언제나 어디서든지 그 당시 멋있게 느껴졌던 사진이나 인터뷰들이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잡지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내가 조금만 실력 발휘를 하면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 있다. 그렇다고 매거진의 매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원하는 것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고 해서 철도 매거진만의 기묘한 분위기를 대충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확실한 건 아직도 그때의 분위기를 기억하며 철도 매거진은 장르와 상관없이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 구독을 선호한다. 내가 거주하는 영국은 철도와 관련된 종사자만 무려 19만 명, 32,000km의 철도를 운영하고 2500개 역, 4만 개가 넘는 다리와 터널을 관리하며 매년 13억의 승객이 철도를 이용하는 거대한 철도산업을 가진 나라인 만큼 각 철도 분야별로 주목할 만한 소식이나 기사가 소개되는 매거진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철도 강국이라고 불리우는 일본보다 철도가 일상 속에 파고든 나라 영국은 일찍이 19세기부터 철도 전문 종사자들과 동호인들 사이에 철도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내는 문화가 형성되어 왔다.
연구소, 학회 기관은 물론 철도에 큰 관심을 가진 동호인들까지 운영, 정책 및 기술과 관련된 의견을 매거진과 저널을 통해 자유롭게 제시하였으며 철도를 취미로 생각하는 독자들을 위한 콘텐츠도 제공하고 있었다. 지금 영국 철도 박물관 홈페이지에는 무려 11가지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추억을 회상하는 독자들에게 열람서비스를 제공 있으니 그 규모는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오프라인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오래된 조그마한 서점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무려 130년 전에 발간된 철도 서적과 각종 잡지들이 가지런히 한 벽면 전체를 채워 놓은 곳을 발견했다. 솔직히 너무 부러웠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철의 여왕 마거릿 대처 여사가 추진한 철도 민영화 정책은 거대한 영국 철도 산업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시대가 변하면서 철도 트렌드도 변해왔다. 매거진도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각자의 모습을 다듬어 왔다. 가능하다면 많은 매거진을 소개하고 싶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으로 선정된 괜찮은 몇가지를 소개해보자 한다.
Railway Gazette International
월간 잡지인 Railway Gazette International는 영국 철도인 뿐만 아니라 세계 철도인에게 도 널리 알려진 매거진 중 하나이다. 19세기 초인 1835년, 영국인 Effingham Wilson에 의해 처음에는The Railway Magazine으로 창간되었으며 이후 1905년 7월에 Railway Gazette으로 변경되었다. 최초 Railway Gazette는 주로 철도의 경영이나 재무 부분을 다루었으나 1935년 Railway Engineer라는 잡지와 통합되면서 철도의 경영, 재무, 현업, 기술분야등 현재 철도산업에 주목할 만한 아이템을 만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1970년 현재 이름인 Railway Gazette International 변경되었으며 이름에 걸맞게 세계 철도인에게 사랑받고 있다. 최근 발간된 2015년 12월호에는 한국철도기술연구원과 한국철도시설공단이 공동 개발 중인 ‘400km/h급 전차선로 시스템’이 소개되었으며 지난 2012년 11월에는 HEMU-430X 차량에 대해 상세히 소개되어 세계 철도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다.
Railway Gazette International 자매지인 Metro Report International는 분기별로 발간되는 매거진으로 주로 메트로, 경량전철 및 트램에 대한 도시 철도 시장에 대해 다루는 매거진이다. 최초 영국 철도 민영화 소식을 전하기 위해 창간된 Rail Business Intelligence 신문 2주마다 발간되는 소식지로 지금은 영국 내 철도 정책이나 비지니스에 대해 다루고 있다.
Railway Strategies
이 매거진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 그래서 철도를 사랑하는 대중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매거진이다. 주로 철도종사자중 매니저급이나 교수급에게만 구독의 기회가 주어지는 매거진이다. 새로운 기술 소개나 비판이 아닌 철도를 운영자 입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술적인 어려움이나 정책적인 사례등 실제중심의 정보를 주로 다루고 있다. 이를 토대로 다른 사업자에게 좋은 벤치마킹이 되거나 영국에서 이뤄지는 전반적인 철도 트렌드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나도 매거진의 존재여부를 인지하지 못하였으나 주변 교수님을 통해서 접하게 되었다. 주로 영국철도의 이슈를 다루고 있으며 간간히 해외소식도 다루고 있다.
물론 이외에도 미쳐 내가 다루지 못한 매거진이 무수히 많다. 문제는 이런것들을 쉽게 손에 넣게 되자 종류가 비슷한 매거진들은 시시하고 뻔하게 느껴지지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가져왔던 고귀한(?) 환상 하나를 잃어버린 것 같은 묘한 감정이라고 할까?
Rail Guide
영국철도차량 ‘바이블’ 이라고 불리는 책이다. 사실 이 책은 ‘Train Spotter’라 불리는 철도 동호인들이 각 지역을 다니며 영국 내 운행되는 기관차부터 시작해서 동차 및 유로스타까지 종류별, 차량편성별 차량번호별등으로 정리하였으며 차량 제조사들의 도움으로 차량 스펙까지 상세하게 정리되었다. 사실상 영국 내 운행 중인 모든 철도차량을 이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무려 400페이지 달하는 이 책은 그 정확성을 인정받아 영국 내 철도 전문인들에게 업무용으로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Traction Recognition이라는 책도 발간되고 있으며 차량의 동력원 기준으로 분류된 이 책에는 각 차량의 동력제원등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내 관심 밖에 있는 매거진이라고 하여도 영국에서 만큼은 모든 철도 매거진은 단순히 소식을 전하는 매체 이상의 역할을 해왔다. 아름다운 철도의 이미지와 예리한 기사를 통해 영국 철도산업의 활기를 불어 넣어왔다. 이러한 꾸준한 노력과 발전들이 영국철도를 지탱해 오는 힘이 되지 않았을까?. 한국도 동호인들의 꾸준한 관심과 발간노력이 철도산업과 문화이 발전에 큰 역할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